최근 몇 년 사이 헐리우드 영화계에는 '실화 기반' 작품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 사회적 문제, 역사 속의 진실을 다룬 실화 영화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감동과 교훈을 전달한다. 이런 실화 영화들 가운데, 2023년 공개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 은 실화 영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원주민 오세이지족을 둘러싼 역사적 범죄를 정면으로 다루며, 사회적 의미와 예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연출력이 담긴 실화 영화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단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오랜 세월 미국 사회가 외면했던 원주민 학살 사건을 치밀하게 재현해내는 동시에, 관객에게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인 서사를 전달한다. 이 모든 것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아이리시맨’ 등으로 잘 알려진 거장이다. 그는 폭력과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능하며, 이 작품에서도 그런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코세이지는 영화적 연출에서 단순히 "범죄를 재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범죄의 구조와 원인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해부해 나간다. 특히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에서는 희생자보다 가해자의 시선을 주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전형적인 피해자 중심의 이야기와는 다르며, 관객 스스로 역사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든다. 또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번 영화에서 오랜 파트너인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모두 캐스팅했다. 드 니로는 오세이지족을 착취하는 백인 농장주 윌리엄 헤일 역을, 디카프리오는 그의 조카이자 이중적인 인물인 어니스트 버크하트를 연기했다. 두 배우의 연기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주며,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영화의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20년대 오세이지족 학살, 우리가 몰랐던 역사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의 배경은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오세이지 카운티다. 이 지역에는 오세이지족이라는 미국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우연히 자신들의 땅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 부는 곧 백인 사회의 탐욕을 자극했고, 오세이지족을 노린 조직적 살인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이른바 ‘오세이지족 학살 사건(Osage Indian Murders)’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 사건은 오세이지족이 소유한 석유 채굴권을 차지하기 위해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계획적으로 결혼하고 살해한 충격적인 범죄다. 당시에는 FBI의 전신인 ‘조직범죄 수사국’이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이는 이후 FBI 창립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영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미국 내에서 원주민이 어떻게 대상화되고 착취당했는지를 조명한다. 오세이지족은 법적으로 ‘무능력자’로 분류되어, 자산을 자유롭게 관리하지 못하고 백인 후견인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 제도적 차별은 살인을 합법적 재산이전으로 둔갑시켰고, 결국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게 만든 것이다. 영화는 이같은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그 위에 얽힌 개인적인 배신과 탐욕을 정교하게 엮어낸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며, 지금까지도 원주민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임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실화 범죄 영화의 윤리적 시선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단순히 실화 기반의 범죄 영화를 넘어, 실화 영화가 가지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가해자들은 단순한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사랑을 하고, 가족을 지키며, 또 다른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런 묘사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중성과 도덕적 회색지대를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영화는 현실에서 벌어진 비극을 소비하는 관객의 시선을 자각하게 만든다. 관객은 이 끔찍한 사건을 영화관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미학적으로 가공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순간, '실화'는 다시 '픽션화'된다. 이러한 메타적 시선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작품에 담은 중요한 철학 중 하나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실제로도 "이야기를 누구의 관점에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초기에는 백인 수사관 중심의 내러티브를 기획했으나, 후에 오세이지족 후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사를 수정했다. 영화의 말미에는 오세이지족의 문화와 언어, 그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실화 영화가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는 당시 백인 중심 사회가 저질렀던 범죄가 단지 개인의 악행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묵인하고 방조했던 구조적 범죄였음을 직시한다. 이 점은 단순한 추리나 반전 이상의 무게를 가지며, 실화 영화가 지녀야 할 무게감을 상기시킨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단순한 실화 범죄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마틴 스코세이지라는 거장의 연출력, 미국 역사 속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인 오세이지족 학살 사건, 그리고 실화 영화가 지녀야 할 윤리적 고민까지 담아낸 진정한 문제작이다. 실화 영화가 단지 '충격적인 사건'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만약 당신이 실화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반드시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